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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바꿔 뛰는 선수들…‘배신’·’선택’ 엇갈린 시선

권은진 | 기사입력 2023/03/15 [09:00]

국적 바꿔 뛰는 선수들…‘배신’·’선택’ 엇갈린 시선

권은진 | 입력 : 2023/03/15 [09:00]

빅토르 안 이어 린샤오쥔까지 다른 나라에 금메달

국내에도 중국 등 귀화 선수들 많아져

 

12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23 KB금융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시상식에서 남자 5000m 릴레이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중국 린샤오쥔이 중국 국가를 부르고 있다. 2023.03.12. 

서울에서 열린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린샤오쥔(중국·한국명 임효준)이 계주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이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처럼 린샤오쥔도 국적을 바꾸고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스포츠에서 한국 출신 감독이 다른 나라 대표팀을 이끌며 국제대회에서 선전하는 경우들은 종종 보아왔지만 쇼트트랙에서 보듯 한국 선수들이 국적까지 바꿔 국내에서 시상대에 오르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이 압도적인 기량을 보유한 이른바 효자종목에서는 그간 한국인 감독들이 해외로 진출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에서 한국 대표팀과 우승 경쟁을 벌이는 일이 있었다.

대표적인 종목은 세계 최강인 양궁이다. 한국인 감독들이 해외 곳곳에 진출해 있다보니 올림픽 양궁 경기장이 한국인들로 북적일 정도였다.

한국이 종주국인 태권도도 한국인 지도자들이 많이 진출한 종목이다. 다른 나라 선수들의 기량은 올림픽에서 종주국인 한국을 위협할 정도다.

베드민턴에서는 셔틀콕의 황제로 불렸던 박주봉 감독이 2004년부터 일본 대표팀을 이끌며 일본 배드민턴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일본 대표 선수들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에서 한국 선수들에 우위를 보이고 있다.중국 하키팀을 강팀으로 변모시켰던 김창백·김상열 감독도 있다. 볼링과 핸드볼에서도 지도자 해외 진출 사례가 있다.

동계 종목 중 한국의 메달밭이었던 쇼트트랙에서도 장권옥, 전재수, 김선태, 박해근, 조항민 등 지도자들이 각국에 진출해 한국 기술을 전수했다.

그러다 빅토르 안 사태가 발생했다. 빅토르 안은 쇼트트랙계 안에서 발생한 내홍 속에 선수가 국적을 바꿔버린 초유의 사태였다.

빅토르 안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획득한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스타였다. 빅토르 안은 무릎 부상으로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빅토르 안은 대한빙상경기연맹 쇼트트랙 대표팀 내 파벌 싸움에도 휘말렸다.

2011년에는 성남시청이 재정 문제로 4년 만에 팀을 해체하면서 빅토르 안은 갈 곳을 잃었다. 2011년 4월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탈락했다.

그러자 빅토르 안은 2011년 말 러시아로 귀화했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에 올랐다. 은퇴무대로 삼으려 했던 2018 평창 올림픽에서 러시아의 선수단 도핑 스캔들에 휘말려 출전이 불발되자 지도자로 변신한 빅토르 안은 2020년 중국 대표팀 기술 코치를 맡았다. 빅토르 안은 중국이 2022 베이징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메달 4개(금 2, 은1, 동1)를 따는 데 힘을 보탰다.

린샤오쥔은 빅토르 안의 뒤를 따랐다. 린샤오쥔 역시 쇼트트랙계 내부 갈등으로 국적을 바꿨다.
 
린샤오쥔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한국 쇼트트랙 간판스타였다.

린샤오쥔은 2019년 진천선수촌에서 동성 후배 선수의 바지를 내리는 장난을 치다 강제 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1년 자격정지 중징계를 받았다.

그는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2020년 6월 중국으로 귀화했다. 그러나 기존 국적으로 출전한 국제대회 이후 3년이 지나야 출전할 수 있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에 따라 지난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린샤오쥔은 2019년 이후 3년 7개월 만인 지난해 중국 대표팀으로 쇼트트랙월드컵에 출전했다. 그는 이번 시즌 월드컵 남자 500m 5차 대회와 6차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어 이번에 한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남자 5000m 계주 금메달을 땄다.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러시아 국기를 흔들던 빅토르 안처럼 린샤오쥔도 중국 대표팀 동료들과 오성홍기를 들고 목동아이스링크를 돌았다.

이처럼 효자 종목 감독들의 해외 진출을 뛰어넘어 선수들이 국적을 바꿔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일이 발생하면서 비난의 목소리기 나온다. 한국에서 국가대표로 성장해 영예를 누린 선수가 조국을 배신하고 다른 나라를 위해 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가대표라는 개념과 상징성 자체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가에 대한 헌신보다 선수 개인의 선수 생활과 성취를 중요시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미 국내에도 선수활동을 위해 귀화한 외국인 선수들이 여럿 눈에 띈다.

실제로 한국 탁구 국가대표로 뛴 전지희와 최효주 역시 귀화한 중국인이다. 여자 탁구 괴물로 불리는 주천희 역시 중국 출신이다. 주천희는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있는 귀화 후 3년이 지나면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나설 계획이다. 도쿄올림픽 탁구 종목에 출전한 세계 각국 선수들 161명 중 중국 출신이 20명이었을 정도로 중국 선수들의 귀화는 드문 일이 아니다.

남자 마라톤의 케냐 출신 오주한, 남자 럭비의 미국 출신 안드레 진, 여자 농구의 대만 출신 진안 등도 한국으로 귀화한 선수들이다.

아이스하키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2017년 하이원의 마이클 스위프트와 마이클 테스트위드, 안양 한라의 맷 달튼, 브락 라던스키 등을 포함해 7명을 귀화시키기도 했다.